한스 아이슬러와 영화음악 - dong-ahome.donga.ac.kr/swcho/text/16/16.pdf · 200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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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아이슬러와 영화음악 CCLIII 한스 아이슬러와 영화음악 20세기의 영화음악을 살펴보면 결코 그냥 지나칠 없는 이름이 있는데 그것은 한스 아이슬러(H.Eisler, 1898-1962)이다. 그가 영화음악만을 작곡한 작곡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화 음악사에 남긴 업적은 남다르기 때문이 . 1) 그러나 그의 정치성때문에 얼마까지만 해도 20세기 음악사에 소개 되지 않았으므로, 글에서는 우선 그의 생애와 예술적인 행로를 (특히 스승 쇤베르크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짧게나마 서술한 다음 그의 영화음 악과 이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아이슬러와 아도르노(T.W.Adorno) 공동저서 『영화를 위한 작곡』 (Kompostion fuer den Film)에서 논의되고 기존 영화음악의 문제점과 개선점을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1 1898독일의 라이프찌히에서 칸트철학의 대가인 유태인계 아버지(Rudolf Eisler) 1) 정육점 딸인 어머니(Maria Ida Fischer) 사이에서 자녀 막내 태어났으며, 수학적 재능이 뛰어났던 그는 1세계대전이 끝난 1919가을에 화성학 음악이론을 가르치기로 소문이 쇤베르크 (Arnold Schoenberg)찾아가 제자가 된다. 엄격하기 그지없는 스승에게 철저하게 음악이라는 예술을 배웠다고 그는 후에 기술한다. 나는 처음으로 쇤베르크에게서 도대체 음악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또한 음악적인 1 ) 아이슬러는 12편의 다큐멘타리 영화와 25편의 장편영화 그리고 2편의 TV영화에 해당하는 화음악을 작곡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쇼스타코비치(Ditimitri Schostakowitsch)남긴 업적 비슷하다 하겠다(쇼스타코비치는 30편의 장편영화에 해당하는 음악을 작곡하였음). CCLIII 2 ) 아이슬러 아버지(Rudolf Eisler)『철학적 개념과 표현사전』 (W rterbuch der philosophischen Begriffe und Ausdr cke)철학의 기본서적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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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한스 아이슬러와 영화음악 - DONG-Ahome.donga.ac.kr/swcho/text/16/16.pdf · 2004. 10. 18. · 6) Hans Mayer: Festvortrag: Der Zeitgenosse Hanns Eisler. In: Guenter Mayer

한스 아이슬러와 영화음악 CCLIII

한스 아이슬러와 영화음악

이 경 분

20세기의 영화음악을 살펴보면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름이 있는데

그것은 한스 아이슬러(H.Eisler, 1898-1962)이다. 그가 영화음악만을 작곡한

작곡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화 음악사에 남긴 업적은 남다르기 때문이

다.1) 그러나 그의 정치성때문에 얼마까지만 해도 20세기 음악사에 잘 소개

되지 않았으므로, 이 글에서는 우선 그의 생애와 예술적인 행로를 (특히 그

의 스승 쇤베르크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짧게나마 서술한 다음 그의 영화음

악과 이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아이슬러와 아도르노(T.W.Adorno)

의 공동저서 『영화를 위한 작곡』(Kompostion fuer den Film)에서 논의되고 있

는 기존 영화음악의 문제점과 그 개선점을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1

1898년 독일의 라이프찌히에서 칸트철학의 대가인 유태인계 아버지(Rudolf

Eisler)1)와 정육점 딸인 어머니(Maria Ida Fischer) 사이에서 세 자녀 중 막내

로 태어났으며, 수학적 재능이 뛰어났던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19년 가을에 화성학 등 음악이론을 잘 가르치기로 소문이 난 쇤베르크

(Arnold Schoenberg)를 찾아가 그 제자가 된다. 엄격하기 그지없는 스승에게

서 철저하게 음악이라는 예술을 배웠다고 그는 후에 기술한다.

“나는 처음으로 쇤베르크에게서 도대체 음악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또한 음악적인 사

1) 아이슬러는 12편의 다큐멘타리 영화와 25편의 장편영화 그리고 2편의 TV영화에 해당하는 영

화음악을 작곡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쇼스타코비치(Ditimitri Schostakowitsch)가 남긴 업적

과 비슷하다 하겠다(쇼스타코비치는 30편의 장편영화에 해당하는 음악을 작곡하였음).

CCLIII

2) 아이슬러 아버지(Rudolf Eisler)의 『철학적 개념과 표현사전』(W rterbuch der philosophischen Begriffe und Ausdr cke)은 철학의 기본서적으로 유명하다.

Page 2: 한스 아이슬러와 영화음악 - DONG-Ahome.donga.ac.kr/swcho/text/16/16.pdf · 2004. 10. 18. · 6) Hans Mayer: Festvortrag: Der Zeitgenosse Hanns Eisler. In: Guenter Mayer

CCLIV 음악과 민족 제16호

고를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또 내가 쇤베르크에게서 배운 것을 말하면 오늘날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어 할지도 모르는데, 그것은 즉 음악에서의 정직함 내지 음악의 책임

성이다. 그리고 자기과시를 철저히 배제하는 것을 들 수 있다...엄격하고도 정직한 음악기술

방법론을 창조한 것과 잘못된 꾸밈이나 잘못된 화려함을 퇴치한 것은 쇤베르크의 위대한 음악사적 업적이다.”1)

스승 쇤베르크의 존재없이 아이슬러를 생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

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동독에서 아이슬러는 자신의 음악관과 스승

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정치간부들의 비난을 받을 때에도 스승을 옹호했다.

그 당시 쇤베르크는 사회주의 체제하의 동구권에서 자본주의 예술, 즉 형식

주의예술의 대표자로 맹렬한 지탄을 받고 있었다. 한 번은 동독의 문화부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쇤베르크에 대해 강연할 때 아이슬러는 다음과 같

은 말로 시작한다. “옛날 중국격언에 자기 스승을 존경하지 않는 자는 개만

도 못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1)

강연이 끝나자 아이슬러의 친구이자 문학자인 한스 마이어(H.Mayer)가 그

중국격언의 출처를 묻자, 아이슬러는 간부들이 무조건 비판할 자세였으므로

처음부터 기를 꺾고 들어 갈려고 혼자서 지어 낸 말이라고 대답했다.

일생동안 스승에 대한 존경심은 변함이 없었으나 1925년에는 스승과 그리

유쾌하지 못한 관계로 결별을 한 적이 있었다. 아이슬러가 수학을 끝내고

쓴 첫 작품 「피아노소나타 1번」(Klaviersonate op.1)은 스승의 추천으로 프라

하에서 연주가 되고 비인의 유니버살출판사에서 발행되어 아이슬러는 음악

계에 성공적인 첫걸음을 하게 되었다. 이와같이 스승 쇤베르크가 자신의 제

자중 알반 베르크(A.Berg)와 안톤 베베른(A.v.Webern)와 함께 뛰어난 제자로

아이슬러를 인정하였으나, 아이슬러의 음악적 회의는 점점 깊어갔고 스승의

12음계 음악을 비판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었다.1) 스승은 제자가 그를 배신

3) Nathan Notorwicz: Wir reden hier nicht von Napoleon. Wir reden von Ihnen! Gespraeche mit Hanns Eisler

und Gerhart Eisler. Berlin 1971, S. 28. 4) Hanns Eisler: Arnold Schoenberg (1954). In: Hanns Eisler, Materialien zu einer Dialektik der Musik, Berlin

1987, S. 217

CCLIV

5) 아이슬러의 회의를 쇤베르크에게 전달한 것은 이전에 쇤베르크 스승이었고 또 그의 재부였던 쩨믈린스키(A.v.Zemlinsky 1871-1942)였다. 1925년 베네치아에서 있었던 국제현대음악학회

(Internationale Gesellschaft fuer die Neue Musik)에 참가하고 아이슬러와 쩨믈린스키는 긴 기차여

행을 같이 하면서 서로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쇤베르크의 수제자인 아이슬러가 12음계 음악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자 쇤베르크에 대해 개인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못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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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아이슬러와 영화음악 CCLV

했다고 비난했지만 아이슬러의 비판은 일차적으로 음악외적인 것이었다. 고

통받는 다수의 인간을 도외시하고 소수 몇몇 사람들을 위한 어려운 음악을

작곡하는 행위에 그는 근본적인 회의를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고독한 음

악’ 또한 ‘예술을 위한 예술’(l'art pour l'art)을 거부하고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이해하기 쉬운 음악을 창조하기를 소원했다.

스승과의 편지교환을 통한 논쟁과 이로 인한 불화는 독자적인 길을 가려

고 하는 제자의 노력과 새로운 시도가 반영된 사례이기도 하지만, 아이슬러

의 예술가적 성향을 잘 드러내는 일이라 하겠다. 그는 혼자 방에 앉아 사람

들이 자기음악을 듣게 될런지 고민하는 고독한 음악인형이 아니라 항상 다

른 예술인, 예컨대 극작가나 영화인과 같이 공동작업하는데 뛰어난 음악인

이었다. 한스 마이어(H.Mayer)가 아이슬러를 “예술적 공감의 대가”(ein

Meister der kuenstlerischen Gemeinsamkeit)라고 할 정도였다.1) 이는 극작가 브

레히트(B.Brecht)에게 아이슬러가 일종의 재료역할을 할 정도로 중요한 동료

였으며, 아이슬러와 같이 일한 많은 영화감독들이 아이슬러를 통해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진정한 의미의 공동작업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다고 하는

증언에서 가히 짐작할 수 있다.1)

아이슬러가 스승을 떠났지만 스승은 자신의 애제자를 이모저모로 도왔다.

아이슬러가 실험영화음악 「Opus III」(발터 루트만이 만든 무성영화)1) 을 작

곡하게 된 것도, 이로 인해 영화음악가로서 첫 경험을 하게 된 것도 스승이

중계한 덕분이었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자 외국으로 망명해야만 했던 스승

땅하게 여기던 쩨믈린스키는 속으로 만족해 하면서 쇤베르크에게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 불

화를 책동한 셈이었다. 쇤베르크 자신도 당시 자신의 획기적인 음악적 발명에 어느정도는 흔들리고 있었으므로 어떤 작은 비판의 소리에도 무척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은 사실이다. 쇤베

르크가 쩨믈린스키에게 보낸 편지와 아이슬러에게 보낸 편지에 쇤베르크의 인간적인 면이 잘 나타나 있다. Albrecht Betz: Hanns Eisler. Musik einer Zeit, die sich eben bildet. Muenchen 1976, S. 45-49. Horst Weber (Hg.): Alexander Zemlinsky-Briefwechsel mit Arnold Schoenberg, Antonwebern, Alban Berg und Franz Schreker. Darmstadt 1995.

6) Hans Mayer: Festvortrag: Der Zeitgenosse Hanns Eisler. In: Guenter Mayer (Hg.), Hanns Eisler der Zeitgenosse. Positionen-Perspektiven. Materialien zu den Eisler-Festen 1994/95, Leipzig 1997, S. 16

7) Joris Ivens: Monolog auf Hanns Eisler. In: Sinn und Form. Sonderheft Hanns Eisler, Berlin 1964, S. 37; Alain Renais, in: ebd. S. 372f; Louis Daquin, in: ebd. S334.

CCLV

8) 이 실험영화는 1927년 바덴-바덴 (Baden-Baden) 음악페스티발에서 아이슬러의 음악과 함께 상

영되었다. 아이슬러는 이 영화음악에서 콘서트음악 「Suite fuer Orchester Nr.1, op.23」으로 만들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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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LVI 음악과 민족 제16호

과 제자는 이국땅에서 서로 동지적인 관계를 가지게 된다. ‘일급 영화음악

작곡가’1)로 헐리우드에서 명성을 누리고 있던 아이슬러는 경제적으로, 건강

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던 노스승을 도와주는 등 지난 날의 은혜를 갚기도

했다.

혁명적이고 정치적인 아이슬러가 철저하게 비정치적이고 보수적인 쇤베르

크의 수제자인 것을 기이하게 여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처절할 만큼 음악

의 진실성과 책임성을 중시하는 스승을 생각하면 이 음악적 원칙을 사회적

인 차원에서 실현한 제자가 탄생한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고 하겠다.

아이슬러는 예술가의 사회적인 책임을 음악 그 자체만큼이나 진지하게 생

각하고 고민했다. 그리고 일반인의 음악에 대한 무관심은 음악을 무조건 어

렵게만 작곡하는 것으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는 음악인에게도 책임이 있

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러한 사고에 기인하여 12음계 음악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실험을 하였는데, 이러한 시도가 1933년 이후

행해졌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아이슬러의 12음계 음악은 추상적이고 복잡한 쇤베르크의 음색을 탈피한

전혀 색다른 것이다. 쇤베르크는 가능한 12음계 기본형(Grundreihe)을 자기음

악에서 잘 찾아내지 못하도록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아이슬러는 반대로 12

음계 기본형을 곡의 테마와 동일하게 설정하는가 하면 가능한 화음이 잘 형

성되도록 기본형의 음들을 배열하였다.

<악보1> 「로마칸타타」의 12음계 기본형

또 음의 반복을 이용해 쉽고도 투명한 음악, ‘탈주관화’(entsubjektiviert) 된

12음계 음악이 되도록 하였다.1)

9) New Look, New York, 16.5.1939. nach: J rgen Schebera: Der Filmkomponist Hanns Eisler, in: G nter

Mayer (Hg.), Hanns Eisler der Zeitgenosse. S. 47.

CCLVI

10) 여기서 12음계 음악의 ’탈주관화‘란 큰 어려움없이 12음계 음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반대로 ’주관적‘ 12음계 음악은 쇤베르크의 음악에서처럼 이 음악이 12음계로 되었는

지 또 12음계 기본형이 무엇인지 전문가조차도 잘 알아내기 힘든 음악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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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아이슬러와 영화음악 CCLVII

<악보2> 「독일교향곡」의 8번째 곡 「농부들의 칸타타」

12음계 기본형 (a)과 곡의 첫부분 (b)

그는 현악3중주 「Praeludium und Fuge ueber B-A-C-H」(op.46)와 같은 교육적

인 목적을 가진 연습곡 뿐만 아니라, 어린이를 위한 12음계 노래와 정치적

이며 계몽적인 12음계 칸타타 10여곡들을 작곡했다.1) 그리고 나찌들의 독

일이 아닌 노동자와 나찌희생자들의 독일, 즉 ‘더 나은 독일’을 염원하는 대

작 「독일교향곡」(Deutsche Sinfonie)도 12음기법을 이용했다. 이 작품은 브레

히트의 정치적인 시를 바탕으로 작곡한(단, 8번째곡 「Bauernkantate」는 브레

히트의 시가 아님) 1 ) 8곡의 성악합창곡과 3곡의 오케스트라 기악곡

(Allegro-Allegretto-Allegro)으로 되어 있는데, 아이슬러가 직접적으로 ‘진보적’

인 예술과 ‘진보적’인 정치의 복합물로서 “수정적인 12음계”1) 음악을 쓴 것

중 대표작이라 하겠다.

「독일교향곡」(op.50)1) 1. 서곡(Praeludium) : 합창

2. 집단수용소에 있는 투쟁자들에게(An die Kaempfer in den Konzentrationslagern) : 소 프라

노, 합창

3. 오케스트라를 위한 연습곡(Etuede fuer Orchester : Allegro energico)

11) 흰빵칸타타(Weissbort-Kantate), 전쟁칸타타(Kriegskantate), 로마칸타타(R mische Kantate), 망명칸타타

(Kantate im Exil), 도깨비칸타타(Gottseibieuns-Kantate), 수용소칸타타(Zuchthauskantate), 아니오칸타타

(Nein-Kantate), 동지의 죽음을 기리는 칸타타(Kantate auf den Tod eines Genossen), 입을 열었던 사람들의 칸타타(Die den Mund aufhatten-Kantate) 등이 있음.

12) 「농부칸타타」의 처음 3부분 가사는 이태리 사회주의자 이그나찌오 질로네 (I..Silone)가 쓴 사실주의적 소설 「빵과 포도주」(Brot und Wein)에서 아이슬러가 부분적으로 추출해 냈고, 4번째 부분은 유리우스 비트너(Julius Bittner)의 오페라 「산호수」(Der Bergsee)에 근거한다.

13) Hanns Eisler: Konsonanzbehandlung in der Zwoelftontechnik. In: Hanns Eisler: Musik und Politik. Schriften 1924-1948, S. 389-390.

CCLVII

14) 아돌프 프리츠 굴(A.F.Guhl)이 라이프찌이 방송심포니오케스트라와 1974년 연주한 CD(Berlin classics제작)가 곡의 해석면에서나 성악가들의 분명한 가사전달 등 막스 폼머 (M.Pommer)의 베를린 방송심포니오케스트라와 연주한 CD(Ars Vivendi 1987년) 보다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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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LVIII 음악과 민족 제16호

4. 추억(Erinnerung) : 바리톤, 합창

5. 집단수용소 존넨부르크(Sonnenburg) : 소프라노, 바리톤

6. 오케스트라를 위한 연습곡(Etuede fuer Orchester : Intermezzo. Allegretto ma non troppo) 7. 더러운 관에 안장된 선동자의 장례식(Begraebnis des Hetzers im Zinksarg) : 소프라 노, 베이스, 합창

8. 농부들의 칸타타(Bauernkantate) 8.1. 흉작(Missernte) : 베이스, 합창

8.2. 안전무사(Sicherheit) : 베이스, 합창

8.3. 대화(Gespraeche : Melodram) : 2인의 말하는 사람, 합창

8.4. 농부의 노래(Bauernliedchen) : 베이스

9. 노동자들의 칸타타(Arbeiterkantate) : 소프라노, 바리톤, 2인의 말하는 사람, 합창 10. 오케스트라를 위한 알레그로(Allegro fuer Orchester : Allegro energico) 11. 후곡(Epilog) : 소프라노, 합창

또 아이슬러가 스승을 떠날 때 회의를 가졌던 12음기법을 1933년 이후부

터 재평가를 하기 시작한 데는 당시 나찌정부의 문화정치에 대한 그의 예술

적 반응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1)

베토벤의 심포니가 나찌의 정치적 목적에 어려움없이 오용되는 사실로 인

하여 음악의 확실한 내용규명이 절실하게 되었다. 그래서 정치적인 가사 사

용뿐만 아니라, 나찌들이 “건전한 독일정신을 썩히며 파괴하는 병균과 같

다”1)라고 추방했던 12음기법을 아이슬러가 「독일교향곡」에 사용한 것도 이

러한 맥락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망명시기의 젊은 작곡가들에게서도 이러한 경향을 찾아볼 수 있는데, 에

른스트 츄레넥(E.Krenek 1900-1991), 파울 데사우 (P.Dessau 1894-1979), 블라디

미어 포겔 (V.Vogel 1896-1984), 에리히 이토 칸 (E.I.Kahn 1900-1956) 그리고

슈테판 볼페 (S.Wolpe 1902-1972) 등의 작품이 그러하다. 이들은 쇤베르크의

제자가 아니었음에도 1933년 이후부터 12음기법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특히 츄레넥은 이미 1920년대에 아도르노와의 토론과 서신교환을 통하여 12

음기법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고, 아도르노의 권유에도 불구하

고 12음계 음악에 여전히 회의를 가졌다.1) 그러나 1934년에 전환기를 겪으

15 ) Albrecht Duemling: Zwoelftonmusik als antifaschistisches Potential. Eislers Ideen zu einer neuen

Verwendung der Dodekaphonie. In: Otto Kolleritsch (Hg.): Die Wiener Schule und das Hakenkreuz. Das Schicksal der Moderne im gesellschaftspolitischen Kontext des 20. Jahrhunderts, Wien 1990, S. 92-106 참조.

16) Musik im Dritten Reich. Eine Dokumentation von Joseph Wulf, Guetersloh 1963, S. 443-444.

CCLVIII

17) Ernst Krenek/Theodor W. Adorno: Briefwechsel, Frankfurt/M. 1974, S. 5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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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아이슬러와 영화음악 CCLIX

면서 12음기법을 사용하여 「황제카알 5세」(Karl V)를 작곡했다.1) 그리고 아

이슬러처럼 쇤베르크가 설정한 12음기법을 탈피하려고 시도하는데,1) 이것

은 그 당시의 시대적인 그리고 역사적인 분위기를 잘 말해주고 있다 하겠

다.

아이슬러는 동료작곡가들에게 12음기법 사용을 권유하며 ‘수정한 12음기

법’을 이상적인 음악재료로 간주하는 듯 하였으나,1) 미국망명중인 1942년부

터는 12음기법을 더 이상 고집하지 않게 된다. 그의 망명생활을 예술적으로

승화한 『헐리우드노래집』(Hollywooder Liederbuch)에서는 12음기법을 거의 찾

아 볼 수 없다.1) 그 이유에 대한 여러가지 설명이 있으나 이 글의 테마범

위를 넘어서므로 여기에서는 생략한다.1) 아이슬러는 12음기법을 새로운 시

각에서 실험하고 이를 영화음악에도 실용화시키는 노력을 하였는데, 이는

망명생활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본다.

이같이 역사적·시대적 변화에 따라 예술기법과 음악스타일을 구체적으로

재창조하거나 변형시켜 왔으므로 아이슬러의 작품세계는 무척 다양하다. 두

차례의 세계전쟁을 겪었으며 독일의 노동운동을 몸소 체험한 바 있고 히틀

러의 득세로 망명생활을 해야했다. 망명생활은 곧 노동운동의 해체와 새로

운 예술적 투쟁방법의 모색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 결과 투쟁음악에서 무조

음악까지 또한 심포니음악에서 영화음악과 재즈음악까지 수많은 장르와 여

러 형태의 음악이 탄생하였으므로 마치 20세기의 ‘음악적 대백과사전’과 같

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다양성때문에 각 시대적 정치적 요청에 따라 아이슬

18) Claudia Maurer Zenck: Ernst Krenek - Ein Komponist im Exil, Wien 1980, S. 60f.

아도르노는 이러한 츄레넥의 시도에 “쇤베르크와 12음기법을 분리하는 것이 정말로 가능한

지” 의문을 표하였다. (Theodor Adorno: Brief

19) an Krenek vom 28.10.1934, in: Theodor Adorno/Ernst

20) 미에서 일할 수 있도록 1930년 중반 계획을 추진하였던 적도 있었으나 실패로 돌아갔

Krenek: Briefwechsel, Frankfurt/M. 1974, S. 52f) 아이슬러는 12음기법을 사회주의 체제에 맞는 음악으로 믿어 스승 쇤베르크를 소련의 음악

아카데

다. 21) 『헐리우드노래집』에서는 브레히트 시뿐만 아니라 파스칼·성서·괴테·휄더린 등의 시를 가사로 작곡했다. 음악적으로는 슈베르트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많다.

CCLIX

22) Karoly Csipak: Probleme der Volkstuemlichkeit bei Hanns Eisler, Berlin 1975, S. 219f; Albrecht Duemling: Lasst euch nicht verfuehren. Brecht und die Musik, Muenchen 1985, S. 466; Claudia Albert: Das schwierige Handwerk des Hoffens. Hanns Eislers "Hollywooder Liederbuch"(1942/43), Stuttgart 1991, S. 9-16 참조하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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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LX 음악과 민족 제16호

러의 예술도 단편적으로 분리, 수용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자면 분

단된 독일의 동독에서는 오랫동안 거의 ‘노동음악의 작곡가’로서만 알려져

있었던 반면에 서독에서는 쇤베르크의 제자로서만 아이슬러를 인정하려는

경향이 강했고 순수예술주의의 관점에서만 작품을 평가해 그의 ‘정치예술적

인’ 독창성과 음악사적·문화사적 의미는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다. 가령 그

의 「독일교향곡」은 가사의 정치성은 인정할 만하지만, 12음계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즉 음악이 걸림돌이 되어 동독에서는 오랫동안 제대로 연주되지 못

했다. 반면에 서독에서는 음악이 높이 평가되었으나 가사가 너무 정치적이

라 걸림돌이 되어 호응을 받지 못하고 오랫동안 도외시되어 왔다. 즉 그의

‘정치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받아들일 수 있는 이상적인 유토피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독일이 통일이 된 이후 1994년부터는 전 동서독의 진보적인 음악

학자들과와 음악인들이 중심이 되어 베를린에서 <국제 한스 아이슬러 학회

>(Internationale Hanns-Eisler-Gesellschaft)를 발족하였다. 매년 <아이슬러축제

>(Eisler-Festen) 및 행사를 통해 ‘통합된’ 아이슬러 수용을 위해서, 그리고 아

이슬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1998년은 또한 그의 100

주년 탄생을 기념하여 독일뿐 아니라 영국·프랑스·미국·벨기에·오스트

리아·스페인 등 여러나라에서 연주회와 강연이 열리고 있다. 이것은 아이

슬러가 비록 오늘날은 미미하지만, 끊임없이 영향력을 가지는 흥미로운 작

곡가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는 증거이다.

음악이라는 예술을 ‘사람이 사람을 위해 만들었다’라는 전제하에 행한 아

이슬러의 예술적 행위는 음악을 사회와 항상 연결해서 바라보려는 젊은 후

세 예술인들에게 거의 유일무이한 본보기이다. 루이지 노노(L.Nono)나 한스

베르너 헨쩨(H.W.Henze), 하이너 괘벨스(H.Goebbels) 그리고 롤프 림

(R.Riehm) 등과 같은 작곡가들은 직접 아이슬러의 제자는 아니었으나 그의

저서와 음악을 통해 중요한 것을 배웠다고 한다. 음악과 정치의 접목이 풀

칠한 듯 어슬픈 것이 아니라 정치성이 음악을 추진하는 원동력이 되고 또한

음악이 정치성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이러한 유기적인 관계의 형성이 가

능하다는 것을 아이슬러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CCLX

또한 독일의 역사와 정치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망명음악’(Musik 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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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아이슬러와 영화음악 CCLXI

Exil)과 1933년 나찌집권때 외국으로 도피한 음악가들에 대한 관심이 독일

음악계에서도 높아지고 있는 요즘 아이슬러는 20세기 음악사에 빠져서는 안

될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다.1)

2

이미 30세 전에 유능한 쇤베르크의 제자로 현대음악의 전문가들에게 인정

을 받았고 30세 초반에는 노동음악가로 국제적인 명성을 누렸던 아이슬러1)

에게는 망명생활이 그렇게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한 특수언어에 종속

되지 않는 음악이라는 매체는 영어권이나 불어권 등의 다른 언어권에서도

문학보다 대체적으로 경쟁력있는 예술이므로 우선 아이슬러에게는 생존의

어려움을 수월하게 하였을 뿐 아니라 새로운 동기유발과 작품활동의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이미 바이마르시대에 영화음악을 작곡한 경험이 있었고 영

화라는 매체를 예술적인 분야로 진지하게 접근했던 그에게 망명생활에서의

영화음악이 가지는 의미는 컸다. 에른스트 토흐 (E.Toch 1887-1964)1)나 에리

히 코른골드 (E.Korngold 1897-1957)1)와 같은 작곡가들이 예술활동은 중단하

고 생존의 수단으로서 영화음악만을 작곡한 반면, 아이슬러는 영화음악을

‘예술적인 실용음악’으로 승화시키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1) 물론 보수

가 많은 영화음악 덕분에 빈곤에 허득이지 않고 생활의 여유뿐 아니라 다른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많은 망명음악인들이 헐리우드에서 행운을 시도했으나 아이슬러 정도의

“Verdraengte Musik. Berliner Komponisten im Exil"(1987), "Entartete Musik. Dokumentation und Kommentar zur Duesseldorfer Ausstellung von 1938" (1988), "Die Wiener Schule und das Hakenkreuz"(1990), "Mus

23)

ik im Exil"(1993), "Musiktradition im Exil"(1993), "Musik in der

24) (Solitaritaetslied, 1931)는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국제노동운동가의 정수

25) uk Traber/ Elmar Weingarten: Verdraengte Musik.

27)

외에 속한다 하겠다.(Brief aus Lodon, Ende Juni 1935. Original im Bertolt-Brecht-Archiv Berlin)

Emigration"(1994) 참조. 특히 「연대가」

로 손꼽힌다. Charolotte E. Erwin: Ernst Toch in Amerika. In: HabakBerliner Komponisten im Exil, Berlin 1987, S.109-122.

CCLXI

26) Christain Baier: Der Filmkomponist Erich W. Krongold. In: Oesterreichische Musikzeitschrift 1997/4, S. 4-6. 1935년 칼 구르네(K.Grune)가 감독한 영화 「Abdul the Damned」 작업중 돈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한다며 아이슬러가 친구 브레히트에게 탄식하는 편지를 보낸 적이 있으나, 이것은 거의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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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LXII 음악과 민족 제16호

성공을 한 사람도 많지 않다. 쇤베르크와 스트라빈스키도 실패한 사례에 속

한다. 아이슬러가 이러한 행운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재능뿐 아니라

대중문화에 대한 그의 적극적인 자세와 (인간적인 매력으로) 친구운도 있었

기 때문이었다. 즉 1939년 뉴욕에서 있었던 세계박물전람회에서 미국의 석

유회사가 후원하여 감독 요셉 로제이(J.Losey, 아이슬러의 친구)가 만든 인형

만화영화 「Pete Roleum and his cousins」가 상영되었는데 대대적인 성공을 거

두었다. 이 영화음악을 만든 아이슬러는 로제이와 더불어 이 기회로 말미암

아 영화계와 이 분야의 전문인들에게 확실한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 덕분

에 아이슬러는 망명예술인에게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웠던 록펠러장학금

을 받아 영화음악에 대한 이론적 연구와 실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프

로젝트에는 역시 미국에 망명해 있던 아도르노도 참가하게 되었으며 그 결

과 두 사람이 공동저술한 『영화를 위한 작곡』(Composing for the film)1) 이 탄

생하게 되었다.1)

여기에서 아이슬러는 그 동안 자신이 영화음악을 만든 경험을 이론적으로

다짐과 동시에 한 걸음 나아가 창의적인 영화음악의 가능성을 더욱 발전시

키고자 한다. 그러므로 어떻게하면 고도로 발달한 영화기술과 아직도 19세

기수준 정도에 머물러 있는 영화음악과의 엄청난 간극을 극복할 수 있는 지

의 여부를 연구과제로 삼는다. 이러한 의도에서 새로운 음악재료, 특히 12음

계 음악이 대표되는 현대음악을 영화에 사용하려는 프로젝트의 기본 아이디

어는 상당히 의미있는 것이라 하겠다.1) 이에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 프로

젝트가 영화산업과 관계없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상업적인 가

치를 무시하고 오로지 객관적인 연구를 감행하였음을 밝힌다. 우선 아도르

노와 아이슬러는 책의 서문에서 현대 대중문화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서술

한다.

28) 이 책은 영문판으로 1947년 뉴욕에서 출간되었는데 아이슬러 혼자 저자로 언급되었다. 당시

아이슬러가 소련의 첩자로 몰려 미국관청에 의해 심문 중이었으므로 아도르노가 그 여파로 인한 신변의 위험을 생각하여 자신의 저작권을 포기하였기 때문이었다. 1969년에 독문판이 출간될 때 처음으로 두 사람의 이름이 공동저자로 실렸다.

29) 이 록펠러 프로젝트는 원래 1940년 봄부터 1942년 봄까지 2년 만기였으나, 1942년 말까지 9개월간 연장되었다. 이 연구팀의 팀장은 아이슬러였다.

CCLXII

30) Theodor Adorno/Hanns Eisler: Komposition fuer den Film (1969년판). Hamburg 1996, S. 159.

숨은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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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아이슬러와 영화음악 CCLXIII

“이전의 진지한 또는 가벼운 예술의 구분이나 고귀하다 혹은 저속하다, 내지 고유한 예술이

냐 유흥물이냐의 구분으로는 현대문화의 새로운 현상을 전혀 묘사할 수 없다. 현대인의 자

유시간을 메우는 수단으로서의 예술은 어떤 분야임을 막론하고 모두 유흥물에 속하기 때문

이다. 이는 기존의 예술적인 소재나 형태를 취한다 해도 다를 바가 없다. 이러한 아말감적

인 변화과정(Prozess der Amalgamierung)으로 인하여 미학적인 예술의 고유함이 파괴되어 왔

다… 즉 소비의 생리에 자기를 맞추지 않는 예술은 자멸하고 고립되기 마련이다. 그외 다른 모든 것은 제멋대로 빼어내고 들어내어 원래의 의미가 상실된 채 재조립된다. 이러한 과정

에서 유일한 잣대는 얼마나 효과적으로 소비자들을 끌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이러한 대중문화 중에서도 가장 아말감성향을 잘 나타내는 것이 영화라 할 수 있다. 이는 영상·말

·음·각본,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사진기술 등의 발전이 이미 문화의 상품화를 겪고 있던 사회일반의 아말감적 변화과정과 잘 맞아 떨어 졌기 때문이다.”1)

그러나 저자들, 특히 아이슬러는 이러한 상업성의 극대화를 노리는 현대

대중문화산업의 대표적 매체인 영화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위에서 말했듯이 영화제작과는 떼어놓기 힘든 현대 테크닉의 무한한 가능성

과 “이 테크닉이 예술에 사용될 때의 예술적 가능성은 아무도 예견하기 힘

들 정도로 크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아주 형편없는 영화에서도 이러한 가

능성이 순간적으로 반짝인다”라고1) 할 정도로 이들은 영화가 가지고 있는

기술적인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그렇다고 아이슬러와 아도르노가 이러한 영화산업의 기술적 진보를 무조

건 추상적으로 찬미했다는 말은 아니다. 영화음악의 수준을 높인다는 것은

곧 영화예술의 향상을 의미하며, 이는 더 나아가 곧 대중문화의 향상으로

본다면 기존의 영화음악을 구체적으로 분석·비판하는 것이 저자들이 해야

할 첫 과제일 것이다. 아이슬러와 아도르노의 비판을 전체적으로 보면 기존

영화음악이 화면과 줄거리에 종속되어 전혀 창조적이고 독자적인 역활을 가

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저자들의 구체적인 비판을 세 가지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영화음악이 창조적인 기능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우선 일반적으로

기존영화음악의 존재가치를 관객이 영화음악을 ‘듣지 못해야 한다’는데 두

는 잘못된 선입견이 영화제작자들에게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말이라

31) Ebd., S. 13f.

CCLXIII

32) Ebd., S.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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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LXIV 음악과 민족 제16호

는 매체가 다른 무엇보다 큰 비중을 차지할 순간에 음악에 비중을 두게 되

면 영화에 방해가 될 경우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방송테크닉에서 말하는 음향적 배경의 보완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런 경우 소위 잘 들리지 않는 음악을 사

용하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왜냐하면 소음과 같은 음향은 이런 경우 들려

야 그 효과가 있는데 비해 ‘귀에 잘 띄지 않는’ 음악은 말 그대로 잘 들리

지 않아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영화음악을 소음적 효과(Geraueschcharakter

der Musik)로 사용하는 것은 ‘사실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띠는 영화에 오히

려 상응한다고 본다.1) 언제 음악이 의식적으로 들리도록 해야 하는지, 또

언제 잘 들리지 않게 해야 하는지는 각본의 구체적인 조건과 요구에 따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영화음악이 잘 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은

영화음악이 가지는 많은 가능성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의 줄거리를

중단하고 음악을 펼치는 것도 중요한 예술적 기법이 될 수 있다. 한 예로

반나찌 영화에서 관객의 여러가지 사적인 심리반응을 일으키는 장면이 있다

하자. 이때 음악이 끼어들어 관객으로 하여금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든지, 화

면의 사건에 거리감을 가지게 하거나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는 등 여러 방향

으로 영화의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1)

(2) 기존 영화음악이 영화에서 창의적인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은 또한 음

악적 기법을 잘못 사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영화계의 상습적인 음악적 실

습과 편견에 기인한 것이다.

(2.1.) 즉 바그너식의 주모티브 (Leitmotiv) 테크닉이 영화음악에서 주로 통

용되고 있으나, 바그너의 음악극에서 주모티브가 “숭고한 것(Erhabenes), 혹

은 우주의 의지(Weltwillen)나 원천적인 것(Urprinzip)”을 상징하는 반면, 주로

현실을 반영하는 영화에서는 이러한 바그너적 상징성이 별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이미 영상이 뚜렷하게 말하고 있는 사실을 주모티브가 이중으로 말

하는 결과가 되어 일종의 ‘음악적 주방장’(musikalischer Kammerdiener) 정도로

33) Ebd., S. 27.

CCLXIV

34) Ebd., S. 28. 이렇게 음악의 삽입으로 줄거리를 중단하여 감정몰입을 방해하는 기법은 브레히

트의 ‘서사극’(episches Theater)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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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아이슬러와 영화음악 CCLXV

그 역할이 하락되었다는 것이다.1) 그러므로 주모티브의 천편일률적인 사용

은 비효과적이다.

(2.2.) 영화음악에서 특히 노래하기 쉽고 듣기 쉬운 멜로디를 선호하는 현

상이 있는데, 이도 영화음악의 발전을 위해 지양되어야 한다. 우선 영화계에

팽배한 멜로디에 대한 좁은 개념으로는 영화가 요구하는 ‘객관적인’ 성격에

모순이 있다. 멜로디가 부르기 쉽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화음과 리듬이 대칭

됨을 의미하는데, 이를 “산문적이고 불규칙적인 성격”의 영상에 맞추는데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1) 한 예로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구름과 바람 그리

고 비와 같은 자연적인 현상을 담은 영상을 8마디 주기의 멜로디로 된 음악

으로 반주한다고 가정할 때 제대로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또한

영화의 주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영상인데 여기에 이러한 두드러진 멜로

디를 지속적으로 연주한다면 화면의 혼란과 불분명함을 초래하게 될 것이

다.1)

그러나 이러한 모순점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러한 좁은 개념의

멜로디 선호를 고집해 온 것은 소비자인 대중의 취향에 맞추어야 성공한다

는 상업적인 발로때문이었다. 진정한 영화음악의 발전을 위해서는 기존 멜

로디의 개념을 타파하고 무조음악도 포함된 폭넓은 의미의 멜로디 사용이

필요하다.1)

(3) 아이슬러와 아도르노가 기존 영화음악을 비판하는 것은 또한 음악이

영화에서 연상작용을 통한 분위기 조성에만 급급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어떤 분위기의 장면에는 어떤 음악이 사용된다는 값싼 공식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높은 산이 영상에 등장하면 신호전달을 연상시키는 호른

모티브를 현악기가 트레몰로로 연주하도록 하고, 달빛이 은은한 강가의 풀

밭에 보트가 한 척있는 장면에는 영국왈츠가 연주되는 등1) 싸구려 분위기

를 만드는 정도로 음악의 기능이 하락되었다. 물론 영상을 음악적으로 그려

내는 것(musikalische Illustration)도 드라마기술의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이므

35) Ebd., S. 21f. 36) Ebd., S. 24. 37) Ebd., S. 68. 38) Ebd., S. 25.

CCLXV

39) Ebd., S.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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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LXVI 음악과 민족 제16호

로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영상과 연기자의 대화가 이미 명확하

게 이야기하는 것을 음악이 나름대로의 의미부여도 못하면서 이중으로 반복

하는 것은 비경제적이며 영화의 질도 떨어뜨린다.

영화음악이 이처럼 ‘표준화’ 현상을 겪으면서 처음에는 신선함을 주거나

주의를 환기시켰던 음악기법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리고 사용이 흔해짐

에 따라 그 효과가 상실되었다. 즉 온음계 스칼라(Ganztonskala)가 처음에는

으시시하고 긴장감이 도는 효과를 내었으나, 지금은 닳고 낡아 더 이상 제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1)

기존 영화음악이 주로 전통음악을 변용하고 상투적으로 사용해 왔으므로

단조와 장조를 바탕으로 하는 전통음악 재료는 여러 면에서 그 효과를 상실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효과를 창출하고 영화음악의 발전을

위해서는 현대음악의 무한한 가능성과 그 새음악 재료의 여력을 영화음악에

실험하고 사용할 것을 저자들은 주장한다.1)

비판과 분석의 다음 단계로 저자들은 이 영화음악책에서 현대음악과 그

새로운 음악재료가 어떤 점에서 영화음악에 적합하며, 또 어떻게 영화기술

의 수준과 걸맞는 영화음악을 창출할 수 있는지의 가능성을 연구한다.

쇤베르크와 바르톡(B.Bartok) 그리고 스트라빈스키(I.Strawinsky)가 남긴 음

악을 여기서 현대음악으로 간주한다. 일반적으로 이들 음악의 결정적인 것

을 불협화음이 풍부하다는 것으로 잘못 인식되어 있다. “불협화음은 단2도나

장7도와 같은 음정을 동시에 사용하거나 6개이상의 음들로 된 화음이 만들

어 낼 수 있는 외적인 현상”이다.1) 그러나 현대음악의 진정한 업적은 “기존

의 관습적인 음악언어”를 깨뜨렸다는 것이며,1) 이로 인해서 음악구조에 변

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현대음악이 어떤 점에서 영화음악

으로 적합하다는 것일까.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4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1) 현대음악의 형식이 대체로 무척 짧다는 것이다. 이는 여러가지 부분을

몽따주원칙으로 붙여 만드는 영화의 성격에 상응하는 장점이다. 고전음악은

40) Ebd., S. 35. 41) Ebd., S. 36. 42) Ebd., S. 67.

CCLXVI

43) Ebd., S.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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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아이슬러와 영화음악 CCLXVII

이에 비해 길고 발전해 가는 형식을 가진다. ‘한 음의 구심점’(einen tonalen

Zentrum)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반복과 발전, 긴장과 긴장의 해소 등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불리하다.1) 그리고 낭만주의의 음악, 즉 쇼팽이나 슈만에

서 볼 수 있는 짧은 형식은 그러나 진정한 의미로 짧다고 할 수 없다. 왜냐

하면 이들의 노래 비슷한 형식의 기악곡이 짧은 것은 단지 중간에 중단해

버린 미완성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음악의 짧은 형

식은 낭만주의적 미완성곡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말하자면 한 음의 구

심점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새로운 음악언어와 논리에서 기인하는 짧은 형식

이기 때문이다.

“현대음악의 음악적 사건은 반복되지 않고 또한 반복을 요구하지도 않는

다. 오히려 처음엔 독립된 의미를 가지며 이것이 펼쳐질 때도…재현부와 같

은 대칭적인 상응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고 변주되어 그 원래의 형태를 바로

알아볼 수 없다.”1) 그러므로 쇤베르크의 모노드라마 「(밀애의) 기대감」

(Erwartung) 이나 피아노곡 작품번호 11번과 19번(「Klavierstuecke」 op.11 &

op.19)에서 볼 수 있듯이 단도직입적인 현대음악에서는 쓸데없는 군더더기

가 붙지 않는다는 것이다.

(2) 위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불협화음이 풍부한 것은 현대음악의 본질이

라 할 수 없는 외형적인 현상이지만 영화에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즉 불협화음에서는 음이 그 정체성(Statik)을 잃게되고 불협화음이 해소되지

않아 음들이 역동적(dynamisiert)이다. 그래서 강한 긴장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현대음악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1) “이 새로운 (음악적) 언어는 모티브

나 테마가 씨름하는 전개부에 이르기 전에, 즉 갈등(Konflikt)을 겪기 전에

이미 드라마틱(dramatisch)하다. 이것은 영화의 성격과 비슷한 점이 있다.”1)

왜냐하면 영화도 기본적으로 “긴장감을 형성하는데 주력하는 원

칙”(Spannungsprinzip)에 따라 움직이는 매체이기 때문이다.1) 다시말하면 「킹

콩」과 같은 영화에서의 쇼크나 센세이션을 표현하는데는 역시 쇤베르크의

44) Ebd., S. 64. 45) Ebd., S. 65. 46) Ebd., S. 63. “현대음악화음의 본질은 긴장감이다”라고 저자들은 서술한다. 47) Ebd., S. 67.

CCLXVII

48) Ebd., S.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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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LXVIII 음악과 민족 제16호

무조음악과 같은 현대음악이 더욱 적합하다는 것이다. 또 히틀러의 파시즘

과 그들의 엄청난 죄악을 베르디와 같은 음악으로 반주한다고 가정해 보면

어떠한 차이점이 있을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슬러 자신의 영화음악에서 한 예를 들면, 「사형수도 또한 죽는다」

(Hangman also die)1)라는 영화에서 한 나찌장교의 회의실에 대형의 히틀러

사진이 걸려있는 장면이 있다. 이때 히틀러의 사진과 함께 10음의 불협화음

(mit einem zehnstimmigen Akkord)으로 이 장면이 끝나는데 어떤 다른 고전적

인 화음보다 그 표현력이 크다 하겠다.1)

(3) 또 현대음악의 극한적인 표현력은 현대인의 삶을 묘사하는 영화의 시

대감각에 어울린다.

“고전음악에서도 항상 슬픔과 아픔 그리고 불안이 표현이 되는 것이 사실

이지만 현대음악은 이러한 감정을 극한적(Zur Masslosigkeit)으로 몰고가는 경

향이 있다. 말하자면 슬픔을 극단적인 좌절(grauenvolle Verzweiflung)로 까지

고조시키거나, 고요함을 유리같이 경직(glaeserne Starrheit)된 상태로 표현하며,

그리고 불안감은 히스테리적 공포(Panik)로 표현을 극대화한다.”1) 물론 현대

음악이 쇼크나 공포의 히스테리만을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엄청나게 부드러운 것이나 표현하기 힘든 아픔 또는 헛된 기다림, “현대

인의 무표정(Ausdruckslosigkeit)이나 무관심(Gleichgueltigkeit) 그리고 무기력

(Apathie)” 등 전통음악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차원으로까지 나타낼 수 있다.1)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렇듯 표현의 폭을 넓히고 깊이와 정도를

심화시키는 현대음악은 또한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해 빙빙 둘러가지 않아도

되는 단도직입적인 짧은 형식 덕분에 표현의 성격을 재빨리 전환시킬 수 있

다는 것이다. 반대로 “베를리오즈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게서 볼 수 있는

‘기습적 테크닉’(Ueberraschungstechnik)을 제외하면 전통음악에서는 표현의

성격(Wechsel von Charakteren)을 바꾸기 위해서는 대체로 시간이 필요하다.

49) 이 영화제작에 브레히트와 존 위슬리(John Wexley) 그리고 프리츠 랑(Fritz Lang)이 참가했다.

1943년에 만들어진 이 반나찌영화를 위해 아이슬러가 쓴 음악이 오스카상의 영화음악부문에 추천이 되었으나 상은 못받았다.

50) Theodor Adorno/Hanns Eisler: Komposition fuer den Film, S. 62f. 51) Ebd., S. 66.

CCLXVIII

52) Ebd., S.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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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아이슬러와 영화음악 CCLXIX

왜냐하면 음의 조(Tonart)와 이에 상응하는 부분들 간에는 어느 정도 균형이

필요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것을 바로 나열하는데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1)

4) 아이슬러와 아도르노는 천편일률적인 도식과 관습을 지양하고 각 장면에

따라 새로운 의지로 생각해 낸 음악을 “객관적인(혹은 냉정한) 영화음

악”(sachliche Filmmusik)1) 이라 칭하며 현대음악이 이 기능을 잘할 수 있다

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현대음악 역시 이러한 ‘이성화 과정’(Prozess von

Rationalisierung)에 의해 발전되어 왔기 때문이며, 이 과정에서 외적으로는

무질서해 보이나 실제로는 엄격한 ‘구조적인 원칙’(Konstruktionsprinzip)을 가

지게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1 ) 이는 곧 음악을 구성할 때 비논리적이고

불필요한 것을 배제한다는 의미인데, 이 뒷배경에는 저자들이 현대음악 중

특히 쇤베르크의 12음계 음악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1) 그

러므로 현대음악의 새로운 재료는 전통음악이 흔히 일으키는 연상작용을 가

지지 않아 앞에서 논의된 상투적인 영화음악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주 훌륭하게 잘 처리해 낸 장면도 낡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상투

적인 음악으로 망칠 수가 있는데, 12음계 음악을 이용한 ‘객관적인(냉정한)

영화음악’으로 이를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론을 아이슬러는

「14가지 비의 서술」(Vierzehn Arten, den Regen zu beschreiben op.70)이라는 작

품에서 실험하였다. 이 12음계 음악은 주로 실험영화를 만드는 요리스 이벤

스(Joris Ivens)감독의 실험적인 무성영화 「비」에 연주된 영화음악이다.

<악보3> 「14가지 비의 서술」 Nr.1(Anagramm)

53) Ebd., S. 66. 54) Ebd., S. 58. 이 때 ‘객관적’(sachlich)이라는 말은 차갑고 무심하다는 뜻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

만을 허락한다는 말이다. 55) Ebd., S. 58f. 원칙이 있다는 것은 곧 ‘객관화’를 의미한다.

CCLXIX

56 )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아이슬러가 쇤베르크의 직제자였으며 아도르노도 알반 베르크의 제자였으므로 이들이 쇤베르크의 음악을 현대음악의 최고봉이라고 여기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그래서 저자들이 처음에는 현대음악 일반을 말하다가도 어느새 12음계 음악을 뜻하

는 경우가 흔해 혼란이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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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LXX 음악과 민족 제16호

이 곡은 스승의 이름 첫자로(A-eS-C-H, Arnold Schoenberg) 시작하며, 악기

구성도 스승의 「삐에로 뤼네」(Pierrot Lunaire)의 것과 같다. 아이슬러가 실내

악인 「삐에로 뤼네」의 악기구성(플루트·클라리넷·바이올린·비올라·첼

로·피아노)을 선택한 것은 단지 스승을 존경해서 뿐만이 아니다. 스튜디오

에서 녹음하는 영화음악에는 거대한 오케스트라보다 오히려 작은 규모의 실

내악 구성이 더 적당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쇤베르크가 매우

부러워했다는 이 작품을 그의 70세 생신때 헌사했다(아이슬러는 영화음악을

콘서트 음악으로도 전환시킬 수 있음을 여기에서도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순수음악과 실용음악의 경계를 허물어 뜨리는 시도를 몸소 실천했다. 그외 6

편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조곡」(Suite fuer Orchester Nr.1-6), 2 편의 「7중주곡」

(Septett Nr.1-2), 「15악기를 위한 실내교향곡」(Kammersymphonie op.69) 등 그의

실내악은 대체로 영화음악에서 정리하였다). 물론 아이슬러와 아도르노가

12음계 음악자체를 무조건 물신적으로 찬미하는 것은 아니다. 12음계 음악으

로도 영화음악에서 여러가지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위험성을 이들도 의식하

였다. 이때 같은 문제를 두고 음악을 창조하는 작곡가 아이슬러의 입장과

음악을 사색하는 철학자 아도르노의 입장의 차이가 컸다.1) 아이슬러는 “새

로운 재료로 책임성없이 갈기는 식의 작곡태도”(das verantwortungslose

Draufloskomponieren)1)나 “세세한 부분을 지나치게 어렵고 복잡하게 하는 것

과 모든 부분의 반주를 가능한 흥미있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 또한 편

집광적으로 정확히 하려는 태도 그리고 형식주의적인 유희”1)에 빠지지 않

도록 경고한다. 여기에 아이슬러가 예술지상주의적 (l'art pour l'art)인 태도를

거부하고 음악의 실용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자세가 간접적으로 표현되고 있

다.1) 그러나 아도르노는 이와 다른 입장을 표명한다. “기존 영화음악의 약

점이 어느 정도는 인식되어가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57) 물론 아도르노도 창작적인 재능이 뛰어나 한때는 작곡가가 되려고 하였고, 그래서 작품활동

도 하였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아도르노의 미학적·철학적인 면이 의심할 여지없이 두드러져 있다.

58) Theodor Adorno/Hanns Eisler: Komposition fuer den Film, S. 69. 59) Ebd., S. 70.

CCLXX

60) 여기서 아이슬러가 위험하다고 지적하는 사항은 아도르노가 『신음악의 철학』(Philosophie der neuen Musik)이라는 저서에서 현대음악의 특징으로 내세우는 것들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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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아이슬러와 영화음악 CCLXXI

러나 철저한 개혁은 상업적인 이유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 중도적인 입장이 사람들에게 잘 먹혀 들어가고 있는

데 그것은 말하자면 현대적이지만 너무 지나치지 않게라는 것이다.”1) 중도

적인 길로 우회하여 철저한 개혁을 할 수 있다는 생각자체를 아도르노는 착

각이라 주장하며 쇤베르크적인 ‘과격한 오리지날’(das radikale Original)을 옹

호한다.1)

여기에서 나타나는 이들의 견해차이는 이들의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음악

관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아이슬러의 1926년에 작

곡한 연가곡(Liederzyklus) 「신문조각에서」(Zeitungsausschnitte op.11)가 연주되

자 아도르노가 작품평을 쓴 적이 있었다. 이 글에서 아도르노는 아이슬러의

노래가 오늘날 진정한 서정시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긍정적이고 만족스러운 서정시’를 포기하고 그 대신에 신문의 구혼

광고나 저질 대중가요를 가사로 ‘부정적 서정시’(negative Lyrik)를 창출하였

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1) 날카로운 정확성으로 본질적인 것을 신선하

게 표현해 냈다며 이 작품을 추천하면서도 한 가지 점을 비판한다. “음악이

쉽게 이해되도록 하기 위해 음악재료가 현재 성취한 최고의 수준을 사용하

지 않고 이미 지나간 전 단계로 되돌아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정치적이

고 혁명적인 의도가 여기에서 보듯이 미학적으로 (그 시대의 최고수준을 취

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반동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가 있다.”1) 그리고

음악의 자체적인 수준과 대중이 받아들이고 소비하는 음악과의 거리를 어떻

게 해결할 수 있는지가 앞으로 아이슬러가 항상 부딪치게 될 문제라고 지적

했다.

아도르노의 이러한 예견은 한편으로는 타당하다 할 수 있다. 아이슬러는

20세기에 들어 기계기술문명의 발달과 함께 점점 뚜렷해지고 있던 순수 ‘음

악의 위기’1)를 진지하게 생각하였고 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곧 순수음악

61) Theodor Adorno/Hanns Eisler: Komposition fuer den Film, S. 70. 62) Ebd., S. 71. 63) Theodor Adorno: Eisler: Zeitungsausschnitte. Fuer Gesang und Klavier, op.11. In: Theodor W. Adorno,

Gesammelte Schriften 18 (Musikalische Schriften V), Frankfurt/M 1984, S. 524. 64) Ebd., S. 527.

CCLXXI

65) Hanns Eisler: Zur Situation der modernen Musik. In: Musik und Politik, S. 88-93.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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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LXXII 음악과 민족 제16호

과 통속음악의 거리를 줄이는데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는 이러한 문제를

수동적으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지만은 않았다. 스승을 떠나 자신의 길을

가려고 할 때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뤄보려는 각오가 있었던 것이다. 그

러나 아도르노가 위에서 서술한 예견에는 (직접적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으

나) 아이슬러의 재능이 해결될 수 없는 과제앞에서 좌초될지도 모른다는 우

려가 배여있다. 아도르노는 다른 글에서 음악을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쉽도

록’ 하는 어떠한 시도도 환상이라고 더욱 강하게 주장한 바 있다.1)

하지만 아이슬러의 예술행로를 살펴볼 때 아도르노의 우려와는 반대로 아

이슬러에게는 이러한 과제가 그의 창작의욕과 적극적인 예술활동을 북돋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망명시기에 아이슬러가 시도했던

‘12음계 음악의 단순화’ 내지 ‘대중화운동’은 진보적인 정치관이 ‘진보적인

예술’과의 접목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한 예이다.1) 물론 이러한 시도가

제대로 수용조차 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커다란 발전은 아예 기대마저 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순수예술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이처럼 시대

적인 요청과 음악의 사회적 기능을 중요시 여기고, 항상 이러한 관점에서

모든 음악기법 (특히 12음기법)과 테크닉을 평가하고 비판하며 필요에 따라

수정하여 사용하는 아이슬러의 자세와 어떠한 중도적인 해결책도 미심쩍어

하는 아도르노의 원칙은 화해하기 힘들었다.

아도르노에게는 12음계 재료(Zwoelftonmaterial)가 곧 음악적 진실을 의미

했으며 이것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곧 ‘타협’을 뜻하기도 했다.1) 그의 저서

『신음악의 철학』(Philosophie der neuen Musik)에서 스트라빈스키를 쇤베르크

와 비교해 부당할 정도로 혹평한 것은 다른 이유 외에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1 ) “12음기법을 신의 위치로 올려 놓고도 만족하지 못한

다”1)고 아이슬러가 1932년에 비꼬아 말한 적이 있는데 이는 아도르노의 12

66) Theodor Adorno/Ernst Krenek: Briefwechsel. Frankfurt/M. 1974, S. 192. 67) 이에 대해 아이슬러와 철학자인 에른스트 블로흐 (Ernst Bloch)가 대화형식으로 서술한 글 2

편이 있다.(“Avantgarde-Kunst und Volksfront" 1937, in: Hanns Eisler. Musik und Politik, Schriften 1924-1948, S.397-405; "Die Kunst zu erben" 1938, in: Musik und Politik, S. 406-413 참조바람)

68) Theodor Adorno/Hanns Eisler: Komposition f r den Film, S. 118. 69) Theodor Adorno: Philosophie der neuen Musik. Frankfurt/M. 1978 참조. 또한 파울 힌데미트(Paul

Hindemith)도 아도르노의 비판을 받는다.

CCLXXII

70) Hanns Eisler: Zur Krise der buergerlichen Musik (1932), in: Musik und Politik, S.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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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아이슬러와 영화음악 CCLXXIII

음기법에 대한 물신적인 태도를 생각하면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또 이러한 아도르노를 “변증법적 유물론(dialektischen Materialismus)을 변증법

적 신비주의(dialektischen Mystizismus)로 착각한 특이한 경우”1)라고 아이슬

러는 아도르노의 음악철학을 통틀어 비판하였다. 그리고 아이슬러 뿐만 아

니라 아도르노가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12음기법의 창시자 쇤베르크도

아도르노의 철학적인 추상화에 반감을 가졌다. “나는 아도르노를 견딜 수 없

다”(Ich habe ihn ja nie leiden koennen)로 시작하는 쇤베르크의 미완성된 글 한

편이 있음은 이를 잘 시사해 준다.1)

그렇다고 아이슬러와 아도르노가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이들은 베를린 시기부터 서로의 의견차이를 인정하는 친구관계였으며, ‘영화

음악 프로젝트’에서의 성공적인 공동작업이 보여주듯이 망명이라는 특수한

조건에서는 서로간의 의견차이를 적어도 부분적으로나마 좁힐 수 있었던 여

유도 있었다.1)

다시 영화음악책으로 돌아가 보자. 12음계 음악이 영화음악에서 여러 면으

로 장점이 있지만 이에 대한 물신적인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여기

에는 아도르노의 입장보다 아이슬러의 입장이 더 잘 반영되고 있다).

현대음악의 새로운 재료를 우선적으로 여기기는 하되 이것을 절대화할 수

없는 것은 영화음악이라는 특성외에도 음악내적인 이유에 기인한다. 즉 처

음 12음계 재료가 쇤베르크에 의해 사용되었을 때는 ‘재료’(Material)와 ‘그

것을 다루는 방법’(Verfarhungsweise, 아도르노가 즐겨쓰는 용어임)이 아주 밀

착되어 구분되지 못했으나, 20년이 지난 후에는 이들이 서로 분리되어 발전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재료와 이를 다루는 방법은 필연적인 관계를 상실

하게 되었다. 즉 이것의 결정적인 것은 어떻게 재료를 다루느냐에 달렸지

어떤 재료를 사용하는지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다.1) 그리고 이 점

을 아도르노는 그의 『신음악의 철학』에서 아주 자세하게 다루는데 본고에

71) Ebd., S. 188. 72) Hans Heinz Stuckenschmidt: Schoenberg. Leben - Umwelt - Werk. Zuerich 1974, S. 462. 73) Claudia Albert: "Das schwierige Handwerk des Hoffens": Hanns Eislers "Hollywooder Liederbuch".

Stuttgart 1991, S.9-11.

CCLXXIII

74) Theodor Adorno/Hanns Eisler: Komposition fuer den Film, S.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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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LXXIV 음악과 민족 제16호

서는 지면상 생략한다.1)

1930년초에 아도르노가 츄레넥에게 12음계 재료와 쇤베르크적 방법을 분

리시키는 시도에 대해 회의를 (본고 각주18 참고) 표현했던 것을 기억하면

아도르노의 입장에 변화가 있음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 역시

쇤베르크의 작품(변화)에 기인한다 하겠다. 1930년 후반(미국 망명시기)부터

쇤베르크는 12음기법을 더 이상 지속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합창곡 「여섯곡」

(Sechs Stuecke op.35), 「실내교향곡 2번」(Zweite Kammersymphonie) 그리고 「콜

니드러」(Kol Nidre) 등에서처럼 전통적인 3화음(Dreiklang)을 사용하였다. 이

때 같은 전통적인 재료인데도 전혀 다른 신선함을 주는 것은 12음계를 다루

던 경험이 여기에 반영되었기 때문이다.1)

12음계 재료자체가 영화음악의 질을 보증할 수 없듯이 어떤 하나의 음악

스타일을 고집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다시말하면 ‘이상적인 스타일의 영

화음악’(Stilideal der Filmmusik)1)을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 대신 가

능한 여러 방향의 음악을 적절하게, 즉 생산적으로 적용할 줄 알아야 한다

는 것이다(여기에도 아이슬러의 입장이 잘 반영되어 있다).

생산적인 영화음악의 기능 중 아이슬러가 자신의 영화음악에서 주로 실험

해 왔던 것의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드라마적 대위법’(dramaturgische

Kontrapunkt)이다.1) 화면에 대한 음악의 ‘대위법적 관계’란, 예컨대 슬픈 장

면에 슬픈음악을 울리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되는 힘있는 음악으로

관객에게 어떤 암시와 의미심장한 해석을 가능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슬러가 쓴 영화음악에서 예를 들어보자. 1931년 브레히트와 두도브

(Slatan Dudow)가 만든 영화 「쿨레 밤페」(Kuhle Wampe)에는 가난하고 더러

운 베를린의 슬럼가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영상이 나타내는 것은 좌절과

무기력함이다. 이 장면에 아이슬러는 아주 빠르고 날카로우며 힘있는 음악

75) Theodor Adorno: Philosophie der neuen Musik, S.112-118 참조. 76) Hartmut Lueck: Arnold Schoenbergs "Kol Nidre". Ein Werk des antifaschistischen Widerstandes? In:

Karin Heister-Grech, Hanns-Werner Heister, Gerhard Scheit (Hg.), Musik zwischen Aufklaerung und Kulturindustrie. Hamburg 1993 참조.

77) Theodor Adorno/Hanns Eisler: Komposition fuer den Film, S. 115.

CCLXXIV

78) Ebd., S. 48. 그리고 Hanns Eisler: Aus meiner Praxis (Ueber die Verwendung der Musik im Tonfilm, in: Musik und Politik, S. 383-38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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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아이슬러와 영화음악 CCLXXV

을 작곡했다. 영상과 대조되어 음악은 일종의 쇼크효과를 내었고, 해석에 따

라 저항감마저 줄 수 있다. 또 다른 예를들면, 1933년에 프랑스 감독 빅토

트리바스(Victor Trivas)가 만든 「거리에서」(Dans les Rues)라는 영화에 젊은 폭

력배들끼리 서로 피나는 싸움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여기에 아주 부드럽고

슬프며 유리같이 투명한 변주곡을 아이슬러는 작곡했다. 이 부드러운 음악

은 관객으로 하여금 거칠고 험악한 사건으로부터 간격을 두고 관망하게 하

며, 폭력을 휘두르는 자가 곧 스스로 희생자임을 암시했다.1)

이렇듯 똑같은 장면도 어떤 음악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는 천차만

별이다. 이러한 ‘대위법적’ 방법으로 화면이 직접 말하는 것에 물음을 던지

거나 또는 반대로 화면이 말하지 않는 것을 관객에게 암시를 하거나 설명할

수도 있다. 그래서 도식적이고 관습적인 영화음악과는 달리 새로운 긴장과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또한 영화음악이 종래의 분위기를

살리기에 급급했던 ‘배경음악’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할 뿐 아니라, 화면에

대해 독립적인 역할을 주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것은

곧 영화음악의 발전을 의미한다 하겠다. 게다가 화면만으로 어떤 긴장과 암

시를 만들기 위해 투자하게 되는 시간과 경비를 절약할 수 있어서 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영화전체의 질을 향상할 수 있는 장점도 생각할 수가 있다.

지금까지 아도르노와 아이슬러가 주장한 것을 정리해 보자. 이들의 주장

중에는 (음악적으로 세밀한 부분에 있어) 서로간의 입장의 차이가 있어 명

제의 분명함을 해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산업의 실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기존 영화음악이 어떠한 약점을 가지고 있으며, 개선돼야

할 점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한다. 또한 쇼맨쉽이나 상업적 이

득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헐리우드의 현실에 대해 한 개인이나 소수인

이 개선을 추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좌절스러운 일인지에 대해서도

저자들은 아주 잘 알고 있다. 영화음악작곡가가 이러한 상황에서 영화제작

자들에게 ‘이 음악은 나쁘다든지 좋다든지 혹은 모던하다 아니다’라는 주장

으로는 쇠귀에 경읽기와 같은 결과밖에 초래할 수 없다고. 그 대신에 음악

적인 것을 ‘테크닉의 문제’로 바꿔 설명할 수 있으면 우선 설득을 시작해

CCLXXV

79) Theodor Adorno/Hanns Eisler: Komposition fuer den Film, S. 48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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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LXXVI 음악과 민족 제16호

볼 수 있다는 것이다.1)

앞에서 열거한 새로운 재료의 음악적인 장점도 결국은 이러한 전제가 있

어야만 적용이 가능하다. 저자들은 다른 영화기술에 상응하는 영화음악의

개선을 위한 ‘완전한 처방’을 내릴 수는 없으나 몇 가지 점을 추천한다.

첫째, 영화음악이 어차피 들리지 말아야 할 경우는 아예 음악을 삼가하는 것이 더 낫다. 둘째, 음악을 화면에 ‘의미있는 소음’(Geraeusch)으로 사용하는 것이 분위기나 맞추는 ‘배경

음악’보다 더 나으니 이 방향으로 더 실험연구를 해야한다. 셋째, “번쩍하고 빛을 발하며(aufblitzen) 불꽃을 튀기는(funkeln)”1)듯한 음악으로 관객이 제

대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듣더라도 음악의 존재와 기능을 느끼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것이 가능할 때 ‘좋은 영화음악’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음악을 쓸 수 있기 위해서는 앞에서 토론된 세세한 모든 것들

이 중요해진다. 즉 다양한 음악기법과 재료(특히 새로운 재료)를 능수능란하

게 다룰 수 있어야 하며, ‘객관적(냉정한) 영화음악’이 되도록 관습에 얽매이

지 않고 상황의 필요에 따라 처리할 수 있는 융통성과 실험적 의지가 요구

된다. 또 음악의 화면에 대한 ‘대위법적’ 처리도 마찬가지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기술적인 것들이 모두 제대로 조화롭게 하려면, 작곡

가가 음악만 작곡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제작의 시작부터 끝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함은 당연한 이치다. 이 책이 씌어진지 50년이 지난 오늘날 영화

음악계에서 여러가지 바람직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일반적으로는 저

자들이 신랄하게 비판했던 부분들이 상업성이라는 원칙하에 ‘이상적인 영화

음악’인 양 판을 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세계적 대성공을 거두었던

영화 「타이타닉」(Titanic)을 보면 이러한 현상을 절감할 수 있다. 저자들이

영화음악의 개선에 있어 다른 어떤 기술적·음악적 문제보다도 ‘상업성의

고려’는 극복할 수 없는 큰 장벽이라 한탄하였으며, 이 장벽이 얕아지기보

다 오히려 더 두꺼워질 것이라는 예견이 적중한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

어 안타깝기 그지없다.1)

80) Ebd., S. 201. 81) Ebd., S. 208f.

CCLXXVI

82) Ebd., S. 190. 저자들은 결국 영화음악의 어떠한 예술적·기술적 개선과 노력도 근본적인 사회

전반의 개혁없이는 큰 효과를 볼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들의 저서 『영화을 위한 작곡』은 아주 ‘정치적인 책’이다.